모스크바 국립대학엔 기숙사가 참 많은데 언어 연수를 목적으로 오는 학생에게 허용되는 기숙사는 3군데 정도입니다. 그 중 제 기숙사는 모든 학생들이 살고 싶어하는 그런 기숙사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세탁기, 가스레인지와 사진엔 안 잡혔지만 냉장고 등 부엌 시설이 완비되어 있으며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다는 이유죠. 어찌보면 당연한 건데 이런걸 좋다고 하고 있으니... 다른 기숙사 사는 친구들은 참 불쌍합니다.
JBL - ON STAGE MICRO
 
 며칠 좀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심하게 아픈건 아니지만 열도 나고 머리도 아프고, 무엇보다 몸에 힘이 나질 않더군요.. 어느덧 이국 땅에 발을 들이민지도 두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여기 생활이 그렇게 맞는건 아닌가 봅니다. 며칠 좋다고 계속 먹어댄 라면도 해로웠던 것 같구요. 집에만 있어서 몸이 안좋은가 싶어 같이 사는 형과 함께 전자상가를 가보기로 했습니다. 지름신이 두렵긴 했지만 잘 견뎌내리라 믿고... 몇번 지하철을 갈아타 전자상가에 도착하니 기분이 조금 좋아지는 듯했습니다.
 한국과 비슷한 분위기의 전자상가를 보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그러한 느낌이랄까.. 왠지 신이 나 여러 곳을 구경하던 중 내가 원하는 가격대의 스피커가 있어 소리만 들어보려고 꺼내달라고 했다가 그냥 지르고 말았습니다. 역시 지름신을 이기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더군요. 스피커를 워낙 좋아하는 탓도 있구요..
 문제는 스피커는 있는데 아이팟이 없다는 거.. 한국에서 주문하긴 했는데 아직 오지 않아 같이 사는 형 아이팟으로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소리는 참 좋습니다. 크기는 작지만 역시 JBL답게 웅장한 저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크기 때문에 소리를 크게 틀었을 때 느껴지는 부족한 공간감은 어쩔 수 없군요. 물론 휴대성이라는 장점이 이런 점들을 충분히 덮어주긴 합니다. 살포시 엉덩이를 들어보면 AA건전지 4개로 즉석 클럽을 만들어주는 깜찍함까지 갖춰줬군요. 정말 최고입니다^^
 다른 반에서 러시아어를 배우는 분께 받은 초대권으로 크레믈 궁에서 열린 음악회를 구경했다. 처음으로 들어간 크레믈 궁도 멋있었고 아름다운 공연도 참 좋았다. 러시아 군악대의 씩씩한 연주 솜씨와 터키의 아기자기한 공연이 어우러져 참 즐거웠다. 특히 마지막 칼린까는 정말 신나고 즐거운 음악이었다! 러시아 예술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느끼게 된 첫 만남.









 건물 하나는 끝내주게 멋있다. 다만 우린 이 건물에서 수업 받는게 아니라는거.. 원래는 여기서 공부하는 줄 알았는데ㅠㅠ
아무튼 이 학교 학생증이 있다고!
 붉은광장 남쪽에 위치한 바실리 성당. 이반대제가 카잔 한을 항복시킨 기념으로 만든 성당이다. 이 성당의 아름다움에 반한 이반대제는 이 성당을 건축한 건축가들의 눈을 뽑아 장님을 만들어 다시는 이런 건물을 짓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8개의 봉우리가 모두 다른 형태이면서 서로 하나로 어우러지는 기막힌 아름다움이 있다..고 들었는데 난 멋있긴 한데 건축가는 왜 죽인거야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작았다. 뭐 동네 성당크기 정도. 내가 사는 동네에서 가까워서 놀러가기 좋다.


 첫눈 오는 날 찍은 야경. 잘 보면 지붕 위에 눈이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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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일 없냐는 친구의 안부인사에 큰일이 없어서 큰일이라는 자조섞인 대답을 하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벌써 이곳에 온지 한달 반이 지났는데 한게 없다는 그런 생각과 이대로 유학생활이 지나가버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닥쳐왔다. 거기다 늘 반복되는 일상에 젖어버려 생활이 바뀐다거나 하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던 나에게 큰 실망감까지 느끼게 되었다. 무언가 의미 있는, 아니 의미가 없더라도 생활을 바꿀 수 있는 그런 무언가를 해보자는 생각에 수업이 끝난 후 모두를 떨쳐버리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무작정 나온 여행이지만 그래도 어디론가 향해야 하는 법. 여러 곳이 생각에 들었지만 러시아 기념품을 판다는 파티잔스카야 역으로 가기로 했다. 자주 가던 지하철이었지만 오늘은 반대 방향에서, 그것도 내 마음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작은 떨림과 무언가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래서일까, 원래 내리려던 파티잔스카야 역을 지나버리고 말았다. 다시 되돌아가는건 시간 문제였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종착역까지 가고 싶어졌다. 종착역에는 뭔가 있을거라는 그런 막연한 기대감, 그런 것이 있었다. 하지만 기대감을 앉고 나온 종착역, 쉘꼽스까야는 모스크바의 여느 곳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왠지 외곽이니 숲과 나무가 펼쳐져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지만 완전히 어긋나고 말았다. 하긴 우리 나라도 끝역이라고 산과 바다가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도 처음와 보는 곳이라는 설레임과 호기심에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거리를 걸어다니고 상점 구경을 하며 보는 것들은 낯선 것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새로워 보였다. 또 어김없이 자리잡은 시장 구경을 하며 모스크바에 있는지도 몰랐던 우엉과 고추, 쑥갓등의 존재는 새로운 메뉴를 구상하게 하는 즐거움이었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중 문득 버스를 타고 싶어졌다. 길도 모르는데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젖혀두고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싶다는 모험심에 그냥 아무 버스나 올라타고 말았다. 일부러 예쁜 여자애 옆에 앉아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생각 같아서는 버스 종점까지 가고 싶었지만 그건 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적당한 시간이 흘렀을때 버스에서 내렸다. 좀더 갈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도 남았지만 그래도 다음에 좀 알아보고 오자는 생각에 인심 좋아보이는 아저씨에게 지하철 역이 어디 있는지 알아낸 후 역으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아까 못갔던 파티잔스카야를 가는 것이었는데 지하철을 타고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어 노선도를 보니까 어느새 노선이 바뀌어 있었다. 아불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오래 있을거 이렇게 된거 이 노선에서 갈만한 곳이 있나 보니 전에 학교에서 배운 치스뜨이 쁘루드이(직역하면 깨끗한 연못)가 있었다. 전부터 가려 했는데 못간 곳이라 오히려 잘되었다 하고 치스뜨이 쁘루드이 역에서 내렸다. 학교에서 시인과 화가들이 서로 만남을 갖는 낭만적인 곳이라 해서 큰 기대를 했는데 날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여행객의 주머니를 노리는 걸인들뿐이었다. 사진을 찍기만 하면 어디선가 달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오랫동안 구경을 하지는 못하고 사진을 찍은 후 황급히 다른 거리로 나갔다. 새로운 거리를 만끽하던 중 내가 좋아하는 뱅앤 울릅슨이 있어 구경을 했다. 역시 좋은 소리에 감탄을 하며 가격을 물었는데 한국보다 비싼 가격에 실망을 느끼며 거리로 나왔다. 
 많이 돌아다녔다고 생각을 했는데 시간을 보았더니 4시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다른 곳에 구경을 가려 했는데 몇번이나 여행객을 노리는 건달들을 본 후 오늘의 일탈은 이정도로 끝내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도중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경험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을 한것도 아닌데 즐거운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했던 기분도 조금 풀렸고 다음에도 이렇게 길을 떠나자는 다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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